산유국들이 지난주 감산 합의를 했음에도 국제유가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돈을 내고 원유를 팔아야 하는 '마이너스 유가'라는 기현상까지 일어나면서 산유국들이 감산 시점과 감산량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20일(현지시간) 뉴욕사업거래소(NYMEX)에 따르면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37.6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로 전 거래일 기준으로도 약 56달러가 폭락했다. 다만 모든 WTI가 아닌 만기가 하루 남은 5월 인도분 WTI에서 일어난 사태로, 원월물(6월물) 가격보다 근월물(5월물)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콘댕고(contango)' 현상이 심화한 결과다.
WTI는 지난 12일 사우디와 러시아 감산 합의 후 하락 폭이 더 커지고 있다. 6일부터 9일까지 12.7% 하락했던 배럴당 WTI 가격은 감산 합의 직후 5일 동안 18.5%가량 떨어지며 20달러 선도 무너졌다.
공급이 줄었음에도 유가가 급락하는 이유는 원유를 저장할 여유 공간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소비는 침체됐는데 원유 생산은 이어지면서 WTI의 생산지인 서부 내륙 지역의 원유 저장 창고는 포화 상태다. 미국 원유 저장 용량은 2주 안에 바닥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이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팔아 치우는 게 높은 저장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된 셈이다. 일각에서 추가 비용을 얹어서라도 원유를 팔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마이너스 유가까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유가 추락에 가속도가 붙자 산유국들은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우디는 감산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감산합의에 따른 감산 시점은 다음 달이지만, 즉시 감산에 돌입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사우디뿐 아닌 다른 석유수출기구(OPEC) 회원국들도 조기 감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OPEC과 러시아 등 산유국 연합체는 지난 12일 5~6월 하루 1000만 배럴의 원유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합의했다. 역사상 최대 감산량이었지만 코로나19로 감소한 원유 수요는 하루 2500만~3000만 배럴로 추산되면서 더 감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정유사들도 추가 재고평가손실을 감수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일각에선 국내 정유업계의 1분기 영업손실이 3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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