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2016년 총선의 최대 이슈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사교과서 국정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노동개혁? 경제? 이런 정책적 이슈들이 최대의 이슈였을까요?
아니면 문재인과 안철수의 야권 분열? 김종인의 더민주 쇄신? 이렇게 야권에서 있었던 일들이 최대의 이슈였을까요?
물론 중요한 이슈였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2016년 총선의 본질은 박근혜 vs 유승민 싸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배신의 정치 논란으로부터 촉발된 박근혜와 유승민의 대결 구도.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진박 논란. 여권의 계파 갈등과 살생부 파문. 청와대와 이한구의 공천 전횡과 친박 실세들의 폭주.
공천 파동의 절정을 보여줬던 김무성의 옥새런도 결국엔 박근혜 대 유승민이라는 이슈에서 파생된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국민들의 상식선을 넘은 기괴하고 황당한 방식으로 희화화된 것도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게, 애초에 유승민은 박근혜와 대립구도에 있을 만한 깜냥이 아니었습니다. 근데 박근혜는 조바심이 났던건지 배신감과 증오에 눈이 멀었던건지,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게 총선을 앞두고 모든 총력을 쏟아부어 유승민 죽이기에만 몰두했습니다. 멍청하고 오만한 친박 실세들은 매일 같이 "유승민 공천을 배제해야 한다", "진실한 친박들이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언론 플레이하고, 자기들 말 안 듣는 김무성도 가만 안 두겠다고 떠벌리고 다녔지요. 그때부터 나는 새누리당이 그 선거 완전히 말아먹을거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치사한 짓거리를 할 거면 국민들 모르게 조용히 은밀하게 해도 모자랄 판에 저 미친 친박들은 자기들 손으로 유승민의 체급을 올려놓고, 선거판의 최대 이슈를 유승민 공천 여부로 만들어 놨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단칼에 유승민을 컷오프시키던가, 수도권 험지로 보내버리던가, 아니면 측근들만 날려서 수족들만 자르던가 했으면 선거를 저렇게 망치진 않았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질려버린 국민들은 이건 아니다 싶어서 투표를 포기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준 야당을 찍어주기도 하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 의사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여당이 참패한 결정적인 요인이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국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너무 많이 노출했다는 겁니다. 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부패보다 무능을, 무능보다 오만을 더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견제없이 오만하게 폭주하는 권력에 대해서는 항상 철저하게 응징을 가해 왔습니다.
4년이 지났고, 정치권은 이제 21대 총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4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박근혜는 헌재에서 탄핵되었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으며, 북풍의 힘으로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했습니다. 문재인의 지지율은 4년전 박근혜의 지지율보다 5% 가량 더 높게 집계되고 있고, 기울어져있던 운동장은 반대로 기울어졌습니다. 야권은 지리멸렬하게 분열되어 있다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뭔가 해보려고 움직이고 있는 중입니다만, 드러나는 수치로 보면 아직도 야당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선거에서 야당이 혼자 잘해서 승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보통은 여당이 폭주하거나 큰 실책을 저지르면, 그에 대한 견제 심리로 유권자들이 야당을 통해 심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근데 제가 느끼기에 현재의 문재인과 민주당은 당연히 선거에서 야당을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거리낌 없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4년전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그랬던 것 이상으로요.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에서 문재인만큼 자기 하고 싶은걸 다 했던 대통령은 없었습니다.
그 정점에 있는게 윤석열과 검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입니다. 문재인은 추미애를 내세워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검사들을 전부 좌천시키고, 정권 차원의 대규모 보복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이 뒤바뀌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상식이 권력 앞에 무너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변수는 윤석열이라는 인물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인데요. 많은 국민들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댓글 수사를 진행하다가 좌천되었던 것, 그리고 다시 돌아와 박근혜, 이명박, 양승태를 수사하고 구속시켰던 것을 말입니다. 어쩌면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대깨문들을 제외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한 일인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문재인과 추미애의 거침없는 폭주 덕분에, 2020년 총선은 본질적으로 문재인과 윤석열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선거를 통해 국민들은 문재인을 재신임할 것인지, 윤석열을 재신임할 것인지 판단할 것입니다. 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하면 윤석열은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 되어 조리돌림당하고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야당이 승리하면 검찰과 야당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될 것이고, 문재인 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이 선거는 모두의 운명이 걸려 있는 단두대 매치입니다.
다른 모든 이슈는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야당이 할 수 있는 건 여당에서 이탈한 유권자들을 담을 수 있는 통합된 그릇을 만들고, 공천으로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겸허히 국민들의 심판을 기다리는 겁니다. 저는 이번 선거의 승패는 문재인이 남은 3달 동안 윤석열을 얼마나 더 탄압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연 총선 전에 문재인이 자기 손으로 윤석열을 내쫓을까요? 나는 문재인과 추미애가 어떤 임계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 순간은 오지 않았습니다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2월 23일 추가 수정: 정치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총선의 최대 변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될 거 같습니다. 전염병 확산이 정치권의 거의 모든 이슈를 묻어버리고 있는 상황이라, 청와대, 법무부와 검찰의 대립 구도도 수면 아래로 묻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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