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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역사

 

존재 연대 : 기원전 2 5 5백년 기원전 1 1 6백년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해 추정을 한 문헌상의 연대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현인 솔론이 한 이야기라며, 솔론이 기원전 6백년 경에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9 천년 전에 아틀란티스 대륙이 가라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원 후를 2천년이라 하여 계산을 하면 아래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틀란티스는 가라앉기 전 1 3 9백년 동안 왕가에 의해 통치되었다고 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연결을 하면 아틀란티스의 존재 연대가 기원전 2 5 5 백년에서 기원전 1 1 6백년 경임을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역사의 시작이 신화를 바탕으로 하듯이 아틀란티스의 역사도 신화에서 시작을 한다. 옛적에 신들은 모든 토지를 구분하여 자기들끼리 분배를 하게 되었다. 이때에 바다와 지진을 관장하는 포세이돈은 아틀란티스를 다스리도록 하사를 받게 되었다. 포세이돈은 그곳에서 클레이토라는 인간의 아내를 얻고 이 사이에서 다섯 쌍의 남자 쌍둥이를 낳았다. 이 중에서 장남인 아틀라스가 왕이 되어 이 땅을 다스리게 되었고, 그의 이름을 본따서 이 땅을 '아틀란티스'라 명명하였다.

 

 

 

아틀란티스는 풍족한 자원과 뛰어난 문명을 바탕으로 매우 번성한 강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포세이돈을 숭상하며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던 아틀란티스도 결국은 부패의 길을 걷게 된다. 백성들은 부와 게으름 그리고 사치의 신인 거짓 신들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에 아틀란티스인 들은 세계 정복을 위한 전쟁에 나서 다른 섬들에 거대한 함대들을 보내 지중해 연안 정착지들의 주민을 노예로 삼았다.

 

그러나 이 정복 전쟁이 '아테네 원정 실패'란 결과를 가져와, 이를 계기로 아틀란티스는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 결국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인하여, 많은 부귀와 영화, 그리고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던 아틀란티스 대륙은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 그 종말을 맞게 되었다.

 

 

아틀란티스의 문명

 

1. 자연 환경

 

리비아와 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거대한 화산섬이다. 이 섬은 매우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장대한 산맥이 존재하고, 온갖 동물들이 번성하는 푸른 벌판, 곳곳에 위치한 천연 온천, 그리고 1년에 2회의 수확을 약속하는 비옥한 토지가 존재했다. 또한 온갖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다. 특히 고대인들이 매우 귀중하게 여긴 전설적인 보석 무지개 빛 '오리하르콘'이 많았다.

2. 인문 환경

 

1). 정치

열 명의 왕들이 각기 자신이 소유한 도시에 이웃한 영지에서 주민과 법률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아틀란티스의 법률 제도는 포세이돈이 물려준 것으로, 이 법률제도 밑에서 주민들은 평화롭게 살았고, 또한 이 법률은 매우 공정하여 만민의 칭송을 받았다. 그리고 아틀란티스의 왕들의 상호관계 및 지배자로서의 교제는 포세이돈의 신명에 위해서 결정되었다.

 

 

2). 경제

아틀란티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운하와 항구, 풍부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한 해상 무역이 번성하였다. 특히 '오리하르콘'의 수출로 인하여 많은 부를 쌓게 되었다. 또한 연 2회의 수확을 보장하는 비옥한 토지와 생산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을 갖춘 자급 자족적인 경제 상태였기에 수입에 비해 수출이 훨씬 많게 되어 많은 부를 축적하여 더욱 번성할 수 있었다.

 

3). 군사

아틀란티스는 전차 1만대, 이두 마차 3만대, 기병, 중무장병, 사궁병, 투창 ,병등의 대군단과 더불어 1 2백척의 군선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해군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마리로 세계 최강의 군대를 지니고 있었다. 아틀란티스가 지중해의 국가들을 단 시간에 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세계 최강의 대군단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4). 신앙

아틀란티스 인들의 신앙의 주체는 그들의 문명의 시조인 바다의 신이며 지진의 신인 포세이돈이었다. 아틀란티스 인들은 도시의 중심에 거대하고 화려한 신전을 건축하여 그들의 신앙의 주체인 포세이돈을 숭배했다.

 

5). 건축술

아틀란티스인 들은 특히 건축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특히 도시의 설계를 들 수가 있다. 섬 한가운데에 건설된 아틀란티스의 수도는 그 규모와 함께 흑색, 백색, 적색의 돌들을 섞어 건축학적으로 조화 있게 설계한 장엄한 공공 건물들이 돋보였다. 또한 이 도시는 완전한 동심원을 이룬 5개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도시에 있는 여러 항만들은 거대한 환상 운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규모와 함께 조형미를 살리는 뛰어난 건축술을 지니고 있었다.

 

 

 

 

아틀란티스의 멸망

 

아틀란티스는 지브롤터 해협 서쪽 대서양에 있었다는 전설 속의 섬으로 12000년 전인 기원전 9700년에 바닷 속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원전 355년경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입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영국의 일간지 더 선(The Sun)의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서쪽으로 850km 떨어진 바다 속에서 대규모 도시의 구획정리 모습을 한 해저지형이 발견됐다. 해저 4200m 속의 이른바 '마데이라 심해분지(Madeira Abyssal Plane).

 

해저에 포착된 도시 모양의 이미지는 너무 크고 반듯하게 잘 정리돼 있어 일부 학자들은 자연적 지형이 아니라 했다. 지난 수 년 동안 탐험가와 지질학자들이 그 해역 바다 밑에서 벽이나 건물처럼 보이는 구조물을 발견했다.

 

 

1998년 아조레스 제도의 북쪽에서 끊어진 해저 케이블을 수선 중이던 프랑스 배가 해저 약 3천 미터 깊이에서 유리질의 화산암 조각을 발견했다. 아틀란티스는 플라톤의 저서 크리티아스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섬이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9천년 전에 아주 강력한 고대국가가 있었다. 이 나라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이상 국가였다. 큰 규모의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하룻밤 사이에 아틀란티스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아직 사라진 섬과 유적들이 수면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배가 향해하기가 불가능하다." 플라톤에 따르면 아틀란티스는 곳곳에 신비로운 과일이 열리고 모든 건물이 금과 은으로 덮인 풍요로운 땅이었지만,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탐욕스러워지게 됐다. 이에 분노한 신은 대재앙을 내려 하룻밤 만에 아틀란티스를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했다고 한다.

 

 

후로 플라톤이 언급한 아틀란티스설에 대한 진위 여부를 놓고 다양한 주장들이 있어왔다. 문적 과도기에는 어느 대륙이 아틀란티스냐를 놓고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대서양이나 지중해설이 유력했으나 자신들의 나라가 아틀란티스라는 주장도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은 자신들의 나라가 아틀란티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가장 합당한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도넬리라는 학자는 아틀란티스 대륙이 지금의 대서양 한 가운데라고 주장하였고 근거로 이집트 문명과 마야에 이르는 동서로 이어진 문화전파루트로서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동서의 문명이 다르게 발전을 하였지만 두 문명은 아틀란티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대홍수로 가라앉은 문명이 대륙으로 전파되어 동서 문화가 제각기 발전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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